연구와 논쟁은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사이트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해외 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일본·중국·러시아가 물고기(조선)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고 청의 위협과 조선 정부의 무능만을 봤다.장정의 내용에는 조선을 ‘속국으로 규정하였고.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조약이다.
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과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이다.비자금 수사 수용거부를 통한 민주선거 보장은 한국에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한 토대를 놓았음이 틀림없었다.
지역균형발전 이룬 YS 경쟁자 DJ 대우하며 개혁 이끌어 YS의 정책 이어받아 꽃 피운 DJ 정보화·복지·남북관계 등 앞당겨 극단적 진영주의에 갇힌 정치판 민주화 초기 정신 거울로 삼아야 5·18특별법 제정한 김영삼 정부1987년 7월 10일 통일민주당사 입주식에서 김영삼 총재(오른쪽)와 김대중 고문이 박수를 치고 있다.타협과 연합과 지속성이 확보되지 못한 영역의 유산은 정반대였다.
군부의 정치개입부터 막아 가장 높게 평가해야 할 성취는 군부 권위주의 유산의 극복이었다.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선진국 진입을 이루어내었다.